1. 냉장고와 벽시계의 협주곡
모든 소음이 잠든 듯한 새벽,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건 늘 무심했던 냉장고의 ‘윙’ 소리다. 낮에는 가족들의 대화, TV 소리, 스마트폰 알림음 등에 묻혀 있던 소리였지만, 새벽이 되면 존재감을 확 드러낸다. 그 소리는 마치 어둠 속을 천천히 가로지르는 유령 같기도 하고, 한 템포 늦은 저음의 배경음악처럼 공간을 메운다.
그 옆에서 벽시계는 ‘짹-짹’거리는 박자를 놓치지 않는다. 평소에는 눈치채지도 못했던 초침의 규칙적인 운동이 새벽엔 유난히 크게 다가온다. ‘짹, 짹, 짹…’ 그 소리에 집중하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 심장 소리인지 시계 소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동기화되는 느낌마저 든다. 마치 온 세상이 이 리듬에 맞춰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사실 이 소리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조용한 새벽에야 비로소 내 감각이 이들을 수면 위로 떠올린다. 사람의 귀는 조용할수록 더 예민해진다. 낮 동안 필터링되던 백색소음이 사라지면서, 일상의 기계음이 마치 존재를 증명하듯 커지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럴 땐 나는 종종 이 소리들에 이름을 붙이곤 한다. 냉장고는 베이스, 시계는 드럼,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는 짧은 기타 솔로. 어쩌면 새벽의 집은 가장 정교한 생활 사운드 스튜디오가 아닐까. 고요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협주곡을 듣다 보면, 내 마음도 조용히 평온해진다. 무심코 흘려보냈던 소음들이 묘하게 위로가 되는 새벽의 순간.

2. 위층에서 들리는 ‘삶의 흔적’들
새벽 2시, 세상이 다 자는 시간인데 위층에서는 ‘또각또각’ 발소리가 들려온다. 규칙적이면서도 조금은 망설이는 듯한 그 걸음 소리는 누군가 잠 못 드는 시간을 조심스레 걷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처음엔 짜증이 났다. 왜 이 시간에 걷는 걸까, 일부러 저러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반복적으로 들리다 보니 이제는 그 소리에 나름의 서사가 생겼다.
가끔은 의자 끄는 소리도 들린다. ‘드르륵-’ 하는 소리 뒤엔 한참의 정적이 이어진다. 그 순간 나는 상상한다. 누군가 식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메모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혹은 혼자 늦은 야식을 준비하며 조용히 접시를 꺼내는 중일지도 모른다. 실제 모습은 다를 수 있지만, 나는 그 소음을 나만의 이야기로 채워 넣는다. 그렇게 보면 이 새벽의 생활 소음들은 단순한 소리가 아닌, 누군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밤에는 층간소음이 더 크게 들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주변이 너무 조용하니까. 또, 벽과 바닥이 낮보다 더 얇게 느껴지는 심리적 착각도 작용한다. 그런 탓에 평소엔 무시할 수 있는 소리도 새벽엔 훨씬 더 예민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소리들이 싫지만은 않다. 오히려 ‘나만 깨어 있는 게 아니구나’ 하는 동질감마저 느끼게 해준다.
가끔은 그 소리에 맞춰 나도 걷는다. 누가 먼저 멈추는지, 누가 먼저 다시 걷기 시작하는지 몰라도, 그런 동시성 속에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는 묘한 위안을 얻게 된다. 새벽의 위층 소음은 그렇게 나에게 삶의 ‘흔적’이자,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증거가 된다.
3. 창문 밖 세계에서 밀려드는 도시의 숨결
창문을 살짝 열면, 새벽의 바깥은 또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낮의 소란과는 전혀 다른 결의 소리들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존재한다. 멀리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 이른 새벽 배달일을 시작한 누군가의 출근길이다. ‘부릉’ 소리가 밤공기를 뚫고 지나갈 때마다, 바람처럼 도시의 숨결이 스쳐간다.
간혹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나, 쓰레기차의 경고음도 새벽엔 더 선명하게 들린다. 특히 청소차가 뒷골목을 지나가며 내는 소리들은 마치 도시가 자기 몸을 닦아내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낮에는 그냥 ‘소음’이지만, 새벽엔 도시가 눈을 뜨기 전, 몸을 가볍게 털어내는 리추얼처럼 느껴진다.
버스가 첫 운행을 시작하는 소리도 있다. ‘부우웅—’ 거리 저편에서 출발하는 첫차는 마치 하루의 신호탄처럼 들린다. 아직 나조차 깨어 있는지도 모르는 시간에 이미 세상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사소한 진동과 바퀴 소리, 신호등의 찢어지는 소리 하나하나가 일상의 복귀를 알리는 듯하다.
그 와중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겹친다. 도시 한복판이라도, 어디선가 참새나 까치가 잠에서 깬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들려오는 그 소리는 도시도 결국 자연의 일부라는 걸 상기시켜준다.
나는 가끔 그런 소리들을 들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새벽은 마치 하루의 부스러기들을 정돈하는 시간 같다. 모두가 자는 시간에도, 세상은 쉬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는 걸 일깨워 주는 소리들. 그 소리들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고, 생각은 차분해진다.
마무리
새벽의 생활 소음은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던 것들이 소리로 변해 다가오는 시간입니다. 때로는 귀찮고 불편하지만, 한편으론 내 삶이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그리고 누군가와 같은 시간 속을 살아가고 있다는 고요한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런 소리들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사려 깊은 감각을 갖게 됩니다.
오늘 새벽, 여러분은 어떤 소리를 들으셨나요?